[카테고리:]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 페루 와라즈 69호수, 해발 4,600m에서 건넨 안부 – 천상의 푸름보다 가슴에 새겨진 사람들

    페루 와라즈 69호수, 해발 4,600m에서 건넨 안부 – 천상의 푸름보다 가슴에 새겨진 사람들

    여행을 떠나봐야 깨닫는 비밀이 있다. 익숙한 동네를 벗어날 때 내가 얼마나 좁은 세상 안에서 살아왔는지 알게 된다. 낯선 사람들과 부딪히고 낯선 풍경을 마주하다 보면, 세상을 품는 마음의 그릇도 조금씩 넓어진다. 인생이 버겁고 지칠 때면, 가슴 벅찼던 여행의 기억은 그 고비를 버텨내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이 되어준다.

    나이 들어 떠나는 여행은 5성급 호텔에 묵어도 고단하다고 들 한다. 그래서 “여행은 다리 떨릴 때가 아니라 마음 떨릴 때 떠나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젊은 날엔 꼬질꼬질한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밤새 걸어도 다음 날이면 멀쩡하던 체력,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60대의 나이에 지구 반대편 페루의 험준한 고산 지역을 기꺼이 견뎌낼 수 있는 체력과 의지가 아직 내게 남아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할 뿐이다.

    페루의 12월은 휴일이 많다. 코이카(KOICA) 봉사자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 중 하나는 이 거대한 남미 대륙을 품어볼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페루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매일 숨을 쉬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나날이었다. 그러나 어느덧 마음의 여유가 싹트기 시작했고, 우아누코에서 함께 구슬땀을 흘리던 단원 네 명이 마음을 모아 와라즈 ‘69호수’라는 거대한 도전 앞에 섰다.

    새벽 6시, 우아누코(Huánuco)를 출발해 라우니온(La Unión)을 거쳐 와라즈(Huaraz)로 향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콜렉티보 차량을 렌탈해 이동하다가, 수도 파이프 공사로 꽉 막힌 도로 위에서 꼼짝없이 두 시간을 멈춰 서야 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운전자들과 주민들 사이에 실랑이가 오가는 동안, 창밖으로 비치는 페루의 풍경은 낯설고도 아득했다. 그렇게 굽이굽이 길을 돌아 밤늦게 도착한 와라즈는 다가오는 성탄의 화려한 불빛으로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거대한 고산 트레킹을 앞두고 몸을 추스르기 위해 모인 우리 네 사람. 60대 이상이 세 명, 그리고 20대 청년 한 명. 세대를 뛰어넘은 이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조합은 오직 ‘봉사’라는 공통분모 하나로 깊은 공감을 나누며 밤늦도록 웃음꽃을 피웠다.

    혹독한 고산병을 이겨내기 위해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긴장 속에서 고산약을 챙겨 먹었다. 건강에 자신 있던 이까지, 숨조차 쉴 수 없는 미지의 땅에서 누군가에게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서로를 조용히 다독이는 밤이었다.

    이튿날 새벽, 투어 차량에 몸을 싣고 우아스카란 국립공원(Parque Nacional Huascarán)으로 향하는 길. 페루의 DNI 와 60세 이상이라는 나이가 가져다준 뜻밖의 할인 혜택 덕분에 국립공원 입구에서부터 작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차에 탄 25명의 여행객 중 대부분은 파릇파릇한 20~30대 젊은이들이었고, 우리 일행 중 셋은 그중 가장 연세가 지긋한 세대였다.

    입구에 도착해 본격적인 발걸음을 뗄 때, 온몸으로 밀려오는 것은 체력적 부담과 형언할 수 없는 설렘이었다. 초원과 계곡을 지나 드디어 마주한 ‘지옥의 구간’. 가파른 비탈길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다섯 걸음 걷고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했고, 미리 싸 온 점심 도시락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오직 초콜릿 한 조각과 에너지바, 그리고 물 한 모금에 의지해 위태로운 발걸음을 이어갔다.

    하지만 지독한 숨이 조여오던 그 고통의 구간에서도, 문득문득 마주한 눈부신 풍경은 멈춰 선 발걸음에 다시 걸을 힘을 건네주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숨이 차오를 때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운 안데스의 대자연. 햇빛에 빛나는 눈부신 설산, 그 설산에서 맑게 흘러내리는 빙하수 계곡, 그리고 드넓은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와 알파카의 평화로움…….

    그 경이로운 풍경에 취해, 우리는 마치 마법에 걸린 듯 다시 묵묵히 걸음을 재촉했다. 힘겨워하는 우리의 짐을 기꺼이 나누어 메고도 특전사 출신 답게 사슴처럼 가뿐히 산을 오르던 동료의 뒷모습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가파른 경사 앞에서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스쳐 지나가는 전 세계 여행자들이 건네는 목소리는 차가운 공기를 녹이는 온돌 같았다.

    “거의 다 왔어요(Almost there!)!”

    “힘내세요(¡Vamos!)!”

    올라가는 이에게도, 힘겹게 내려오는 이에게도 “조금만 가면 돼요, 힘내요, 정상이 보여요”라며 건네는 짧은 응원. 비록 가도 가도 정상이 나오지 않는 마의 1km였지만, 국경도 언어도 다른 그 이름 모를 동행들이 건넨 따뜻한 눈빛과 온기는 해발 4,600m의 극한 속에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진정한 ‘전우애’였다.

    발이 물러져 고통스러워하는 여행객에게 비상용으로 챙겨둔 연고와 밴드를 건네며 서로를 보듬었다. 스쳐 지나가는 이들의 눈빛 속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온 세상이 함께 걷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다다른 고통의 끝, 거대한 설산 품에 안긴 69호수의 강렬한 에메랄드빛을 마주한 순간, 우리 일행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터질 듯한 목소리로 “Corea!”를 외쳤다.

    사실 오르는 길은 녹록지 않았다. 심한 고산증과 저체온증으로 20대 대원이 포기를 선언해야 하는 아찔한 위기도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하산해야 했다. 선택의 갈림길. 누군가를 돌보다가 모두가 무너질 수 없기에 결국 우리는 냉정한 판단을 해야 했다. 숨을 몰아쉬며 오르던 길, 지나온 발걸음을 뒤돌아봤을 때 눈을 의심케 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포기했던 그녀가 힘겨운 몸을 이끌고 끈질기게 다시 우리를 향해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를 향한 간절함과 묵묵한 믿음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마침내 네 사람 모두가 정상에 모여 태극기를 펼쳐 들었을 때, 우리는 평생 잊지 못할 가장 뜨거운 동지애를 나누었다.

    하산길은 또 다른 시련이었다. 수많은 여행기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내려오는 길이 오르는 것보다 더 지독했다. 발바닥의 찌릿한 통증을 참아가며 국립공원 입구까지 걸어 나오는 길이야말로 내게는 마치 죽음의 길처럼 아득했다. 하지만 무거운 발을 끌고 숙소로 돌아와 마주한 와라즈의 밤바람은 그 모든 고생을 사르르 녹아내리게 했다.

    결국, 거대한 산을 오른다는 것은, 자연과의 싸움이 아니라 나와의 싸움이자, 곁을 끝까지 지켜준 동지들의 뜨거운 온기, 그리고 길 위에서 우연히 스치며 건넨 이름 모를 이들의 따뜻한 안부 덕분에 비로소 완성되는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69호수의 찬란한 사진은 낡아 바래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날, 길 위에서 건네받던 낯선 이들의 다정한 미소와 함께 울고 웃었던 동료들의 눈빛은 내 기억 속에 가장 찬란한 보석으로 남을 것이다.

    낯선 나라에서 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간다는 것. 어쩌면 그건, 매일매일 새로운 마음의 지평을 넓혀가는 가장 아름다운 여행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