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
가슴 한구석에 꼬깃꼬깃 접어두었던 지도 한 장이 있었다. 젊은 날, 나의 청춘은 뜨거웠고 마음 한편은 늘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갈망했다. 당대 청년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종군 기자 이진숙의 기록과 ‘바람의 딸’ 한비야의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언젠가는 나도 저 너머의 세계로 떠나게 될 거야.’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품었던 그 꿈은 그러나, 일상이라는 거대한 현실과 치열한 직장생활의 무게에 밀려 서서히 묻혀갔다.
오랜 세월이 흘러 은퇴라는 이름표를 달았을 때, 잊고 살았던 그 불씨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첫 번째 낯선 땅이었던 르완다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모든 소명을 다 쏟아부었다고 생각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익숙한 삶의 평온한 울타리 안에서 여유를 누릴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마음 깊은 곳의 불씨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깊은 곳에서 또다시 떠나고 싶다는 뜨거운 충동이 솟구쳤다. 일상의 안일함이 길게 이어질수록, 오히려 내 안의 세포들은 더 거칠고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던 그 대지를 그리웠다. 르완다에서의 경험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의 서막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짐을 꾸렸다. 이번에는 아프리카가 아니었다. 남미였다. 지구 반대편의 거친 대지, 페루였다.
그렇게 인생 2막의 두 번째 낯선 땅이 시작되었다. 처음 페루 안데스의 정기가 흐르는 우아누코 땅에 발을 디뎠을 때의 공기를 기억한다.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 곳.
온통 스페인어뿐인 그 거대한 대지 위에서 내가 아는 단어라곤 기초적인 몇 마디가 전부였다. ‘소통이 안 되는 이 낯선 도시에서, 과연 내가 살아갈 수 있을까?’ 막막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방이 산맥으로 둘러싸인 낯선 대지 앞에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현지에 도착해 마주한 세계는 너무나 넓고 찬란했다. 그 찬란한 국제적인 환경 속에서 홀로 빛을 잃은 듯 작아진 나를 발견했다.
‘나는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구나. 왜 더 일찍 이 넓은 세상으로 떠나오지 못했을까.’ 그저 평범하게 살아왔던 삶이 후회스러웠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만 같아 작아지고 초조해지는 날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 절망의 바닥을 지나면서, 뜻밖의 깨달음이 찾아왔다. 시간이 흐르고 흙먼지 날리는 우아누코의 일상에 스며들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통째로 뒤집히기 시작했다. 가난을 느끼는 기준이 변했다.
화려한 편의와 많은 소유가 없어도, 가진 것 안에서 스스로 밥을 지어 먹고 안데스의 거친 고원의 산세를 두 발로 묵묵히 걷는 일상만으로도 삶은 꽤 괜찮게 흘러갔다.

내 손으로 하루를 꾸려가는 충만함이 차올랐다.

그때 비로소 뼈저리게 깨달았다. ‘내 삶의 질은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구나.’
이 단단한 생각의 뼈대가 세워지자 신기하게도 외부의 시선이나 결핍감은 더 이상 나를 흔들지 못했다. 물론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세상은 여전히 그들만의 속도와 잣대로 나를 평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 낯선 땅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얻어낸 생존 감각은, 세상을 더 깊고 넓게 품을 수 있는 가장 귀한 자양분이 되었으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지구 반대편의 낯선 도시 한복판, 혹은 무인도에 툭 던져진다 해도, 이제 나에게는 나만의 방식으로 일상을 재건할 가장 강력한 무기가 생겼다.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스스로 살아내는 이 단단한 내면 말이다.
그리고, 세상의 풍파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바로 그 평범함에 있다는 것을 이 거친 대지에서 배웠다. ‘평범하게 산다는 게 가장 어렵다’던 어른들의 그 깊은 뜻을, 비로소 지구 반대편의 흙먼지 속에서 온몸으로 통과해 낸다.

두 번째 낯선 땅, 페루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오늘도 나는 그 평범하고도 단단한 온기와 나다운 속도로 살아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