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ea!” 말을 잃어버린 자리에서 만난 온기

셀바 지역의 특산품과 전통의상을 선보이는 여성들과 함께한 우아누코 축제

말이 통하지 않는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지간한 정신 체력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일이다. 세계를 떠돌다 보면 ‘0개 국어가 된다’는 농담 같은 진실을 매 순간 마주하게 된다. 영어가 온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르완다의 키냐르완다어를 거쳐 페루의 스페인어까지 부딪히다 보니, 이제는 외국어는커녕 모국어인 한국어마저 혀끝에서 맴돌다 툭툭 끊기기 일쑤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는데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으면, 도리어 현지인들이 먼저 내 마음을 읽고 다가와 묻고 대답해 준다. 그 다정한 눈빛과 서툰 배려야말로 언어를 뛰어넘는 가장 뜨거운 마음의 언어가 아닐까.

며칠 전, 우아누코 각 지역에서 모인 특산물 홍보 축제가 열렸다. 우리 사무소도 부스를 마련해 국제부의 활동을 알리고 있었다.

우아누코의 질 좋은 커피를 세계로 수출하고, 장학제도를 연결하는 소중한 일들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축제의 열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생각지도 못한 일격이 날아들었다. MC는 당연히 외국인인 나도 현지 언어를 구사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무대 위를 휘젓던 MC가 갑자기 Extrangera 인 나를 불쑥 호명했다. 엉겹결에 마이크를 건네받은 것이다.

도대체 내게 이런 순서가 돌아올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겨우 내 소개까지는 마쳤는데, 당황한 나머지 그나마 머릿속에 남아 있던 스페인어 단어들은 궤도를 잃은 채 사정없이 흩어져 버렸다. 다음 문장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아득한 공백이 밀려온 순간,

‘내 나라 말이 있잖아’.

이 빛나는 지혜로 결국 내 생의 가장 깊은 언어인 한국어로 입을 떼기 시작했다.

“…….”

순간 객석에서 뜻밖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Corea! 코레아!”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이내 흥겨운 박수 소리가 축제장을 채웠다.

아찔했던 위기의 순간은 그렇게 믿기 힘든 온기로 채워졌다. 그들의 따뜻한 시선과 격려 속에서, 문득 ‘내가 참 멀리도 와서, 이렇게 한국을 알리고 있구나’ 하는 뭉클한 자부심이 밀려왔다. 그동안 낯선 언어와 환경에 눌려 한없이 위축되어 있던 마음의 평정이 비로소 단단하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언어가 유창해서 이 거친 대지를 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툴고 부족했기에, 그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마음을 모아 도와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좌충우돌 부딪히며 살아내다 보니, 어느새 까마득하던 이 낯선 도시의 하루가 고스란히 내 삶이 되어 스며들어 있다.

오늘도 나는 그들의 다정한 온기 속에서 하루를 배우고, 말 대신 마음으로 건네는 삶의 지혜를 선물 받는다. 날마다 깊어지는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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