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 후예 — 손가락에서 낚아채인 것
적도에 가까운 땅 르완다의 햇볕은 늘 강렬했다. 그 뜨거움이 한풀 꺾이는 오후 5시는 나의 어김없는 산책이자 러닝 타임이었다. 6개월이 넘도록 늘 다니던 익숙한 산책길. 작은 도시 후예(Huye)에서 동양인 여성인 나, 이른바 ‘무중구(Muzungu)’의 존재는 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는 평소 누군가의 타깃이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건은 여느 날과 다름없는 일요일 오후에 일어났다. 길옆 교회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파로 거리가 북적였다.

바로 그때였다. 허름한 차림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가온 한 남자가 내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휴대폰을 사정없이 낚아챘다. 하지만 손가락의 고리에 걸려 휴대폰이 쉽게 빠지지 않자, 그는 나를 바닥에 밀쳐버리고는 손가락에서 억지로 폰을 빼내 들고 달아났다.
“Help me!“
목이 터져라 외쳐야 하는데 입술마저 열리지 않았다. 그 광경을 뻔히 지켜보던 인파 속에서, 한 신사가 나와 함께 그를 쫓아주었다. 하지만 남자는 슬리퍼마저 벗어 던지고 르완다의 언덕길을 타고 질주했다. 그리고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도망친 도둑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손발이 사정없이 떨렸고 입술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휴대폰이 없으니 누구에게도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근처에 살던 코이카 동료의 집 문을 두드렸다. 혹시 증거가 될까 싶어 도둑이 버리고 간 슬리퍼를 손에 든 채 횡설수설하는 나를 보고, 그는 나보다 더 당황했다.
경찰서에서 돌아온 대답
경찰의 태도는 미온적이었다. “삼성 폰이 정품이냐, 시리얼 넘버가 어떻게 되느냐.” 그제야 알았다. 중국산 가짜가 판치는 현지 사정도, 해외 나올 때는 기기의 시리얼 번호까지 메모해 두어야 한다는 철칙도.
이어진 말은 더 절망적이었다. “절대로 르완다 내에서는 그 폰이 열리지 않을 겁니다. 국경을 넘어 가까운 콩고에서 켜질 가능성이 크지요.” 결국, 찾기는 어렵다는 결론이었다.
신고를 마무리했고, 코이카 사무소에도 보고해야 했다. 안전 코디네이터와 현지인 담당이 후예 경찰서와 몇 차례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때 곁에서 나를 다독여준 동료 단원이 없었더라면, 그 아찔한 고립감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파견 전에 준비해 두었던 예비 폰을 연결하고서야, 나는 다시 세상과 이어질 수 있었다.
이틀 후, 경찰서에서 문자가 날아왔다. 신용카드와 르완다 ID가 경찰서로 돌아왔다고. 하지만 폰은 없다는 소식이었다.
현지 담당 코디네이터가 도둑을 계속 추적하겠냐고 물었다.
순간 망설였다. 도둑을 찾아 벌을 받게 한들,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외국인인 내가 그 후에 어떤 화를 입을지 알 수 없었다. “그만두겠다.”고 하자 “잘 생각했다.”는 속 편한 대답을 건넸다.
보는 눈이 그렇게 많았고 그 작은 동네에서, 그들이 그 도둑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굳이 들추지 않는 것. 그것이 이곳 사람들이 자국민을 지키는 그들만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짐작일 뿐이지만. 그 묘한 침묵 앞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서글픈 무력감이 밀려왔다.
후예는 그런 곳이었다. 버스터미널에서 모토를 타고 오는 길, 다른 전화를 받느라 목적지를 말해주지 않았는데도, 기사는 영락없이 내 집 앞에 나를 내려주었다.

사실 그날은 다른 곳에 갈 약속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내가 누구이고 어디에 사는지가 이미 온 동네에 노출되어 있다는 뜻이다.
어느 날은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하느라 길가 처마 밑에 섰다. 그곳에서 만난 양말 장수 여인이 이것저것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낯선 언어의 질문에 내가 당황해 멈춰 서 있자, 곁에서 함께 비를 피하던 우무뇬지(자전거 택시 기사)가 나서서 유창하게 내 신상을 털어놓았다.
“저 사람은 CJSM 학교에서 일하고, 집은 저기야.”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이 작은 도시의 투명한 유리알처럼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 그 순간, 언제든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페루, 다시 찾아온 같은 질문
그런데, 삶은 가끔 아주 비슷한 질문을 전혀 다른 장소에서 다시 던지곤 한다. 페루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한 번 데었으니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페루 우아누코의 토요 시장에서 장을 보고 짐이 가벼워 버스를 탔다. 집 앞에 내려 가방을 확인하는 순간, 휴대폰이 사라졌다는 걸 알았다.

휴대폰 안에는 연락처, 수많은 사진, 일상의 지도, 은행 계좌, 번역기, 인터넷, 그리고 현지 사람들과 이어지는 선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휴대폰을 잃는다는 건, 단순히 비싼 물건 하나를 분실하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낯선 땅에서 나를 세상과 이어주던 유일한 창 하나가, 소리 없이 닫히는 일이었다.
르완다 때와는 달랐다. 집에 돌아와 노트북의 메신저 창을 열어 동료 단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야무진 그 동료는 먼저 아이폰 찾기부터 설정하고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기기는 이미 전원이 꺼진 뒤였다.
코이카 페루 사무소에 연락하자 공식적인 경찰 신고를 권했다. 그 안내에 따라, 나는 평소 친분이 두터운 코워커와 기관장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들이 기꺼이 함께 경찰서로 동행해주었다.
한국의 신속하고 체계적인 시스템과는 사뭇 다른, 페루 특유의 느긋한 속도와 처리 과정은 속이 탈 만큼 답답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진심을 다해 도와주려 애쓰는 마음이 전해졌다. 여러 장의 조서가 만들어졌고, 그 서류를 들고 클라로(Claro) 대리점에 달려가 예비 폰을 개통했다.
그 순간에도 생각했다. 곁에서 도와준 동료가 없었더라면, 인터넷이라는 비상구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연결이 끊어진다는 것
결국, 두 나라에서 모두 휴대폰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내가 잃어버린 것은, 휴대폰만이 아니었다. 휴대폰 하나가 사라지는 순간, 세상과 나를 잇던 탯줄 같은 끈 하나가 통째로 끊어진 것 같았다.
휴대전화와 인터넷 공간은 이방인에게 단순한 편의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거친 대지를 항해하는 지도이자 언어이고, 모국인 한국과 연결된 유일한 생명줄이다. 그것을 통째로 빼앗겼을 때 엄습하는 눈앞이 캄캄한 막막함을 누가 알겠는가.
비로소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낯선 땅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선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숨 쉬고 있었는지를.
이 아찔한 소동을 지나며, 낯선 환경에 대처하는 또 하나 비장한 나만의 생존 노하우를 장착했다.
“이런 일마저도, 훗날에는 웃으며 추억할 수 있겠지.“
지구 반대편 우아누코에서의 삶은, 오늘도 그렇게 거친 바람을 맞으며 한 뼘 더 유연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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