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이 앓는 밤
KOICA 봉사자로서 나는 늘 씩씩하고 밝은 사람으로 비쳤을지 모른다.
하지만 낯선 땅에서의 삶이 어찌 매 순간 축제일 수만 있을까. 특히 몸이 아픈 날이면, 홀로 앓아누워 흘려야 했던 눈물 속에서 생각보다 훨씬 깊은 외로움이 밀려왔다.
아픈 몸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곁에 기댈 곳이 없다는 막막함이었다. 르완다에서는 아메바성 장염을 몇 번이고 앓았고, 페루에서는 오른팔이 불쑥 빠져버리는 사고를 겪었다. 몸이 무너져 내릴 때면 마음의 성벽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그 순간, 나는 어쩔 수 없는 한 사람의 외로운 이방인이었다.
르완다, 후예(Huye) — 아메바와의 첫 싸움
2018년부터 2020년 3월까지, 나는 르완다의 작은 도시 후예(Huye)에서 살았다. 청각장애 학교인 CJSM 이 나의 삶터였다.
활동 연장을 위해 코이카의 절차에 따라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리고 결과지를 받아 들었을 때, 믿기 어려운 결과가 나왔다. 아메바균 양성. 아무 증상도 느끼지 못했기에, 믿고 싶지 않았다.

같은 학교에서 활동하던 JICA 단원이 그 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아왔기에 그 지독한 고통을 잘 알고 있었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언제든 고개를 드는 병이었다. 연장 승인의 절대 조건은 오직 ‘단원의 건강’이었기에, 본부에서는 엄격한 치료 증빙을 요구했다.
처방받은 약의 독성은 마치 항암 치료를 받는 것과 같았다.
침대 난간을 붙들고 뒹굴며 견뎌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속이 뒤집히고, 먹은 것을 전부 토해내는 고통 속에서, 불현듯 서글픈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선교사라면 이 땅에서 세상을 떠나는 것을 순교라 하겠지만, 봉사자가 이 낯선 땅에서 아프다 죽으면 과연 무엇이라 부를까. 나는 과연 한국 땅에 묻힐 수 있을까.’
가족들의 얼굴이 차례로 스쳐 지나가던, 잠 못 이루던 밤들의 서늘한 공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원인은 청각장애 학생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다 피치 못하게 입으로 들어간 물 때문이었을 것이다.
키갈리(Kigali), 레메라(Remera) 보건소 — 반복된 장염
3년 뒤, 나는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 있는 레메라 보건소로 재파견되었다. 그곳에서 다시 두 번의 장염을 앓았다. 아마도 날것의 채소가 원인이었을 터라, 외식은 철저히 피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식탁의 음식을 먹어도, 늘 다른 사람들은 멀쩡하고 나만 앓아누웠다.
아픈 배를 움켜쥔 채 채변을 해 들고 보건소로 향하던 발걸음. 한 시간 뒤 밝혀진 결과는 역시나 아메바였다. 다행히 내 활동 기관이었기에 보건소장이 직접 나서 빠른 조치와 처방을 도와주었지만, 정작 그들은 심각한 나를 보며 “괜찮아질 거야”라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들에게 아메바성 장염은 일상의 흔한 풍경이었던 것이다.
아플 때는 온 세상이 캄캄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독한 약효로 겨우 정신이 돌아왔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곁에서 무심한 듯 손을 내밀어 주던 현지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는지를.
페루, 두 번 빠진 오른쪽 팔
지금 살고 있는 페루 우아누코에서는, 팔이 두 번이나 빠지는 아찔한 일을 겪었다. 한 번은 곁에 있던 단원이 급히 당겨 맞춰 주었고, 또 한 번은 팔을 부여잡은 채 모토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달리던 중 도로의 거친 둔턱을 넘는 충격 덕분에 팔이 제자리로 툭 돌아오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병원. 페루 ID를 버젓이 가지고 있음에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접수가 지체되었다. 기관장에게 연락해 신분확인을 마치고 나서야, 접수가 이루어졌다.
의사 앞에 앉은 나는, 열악한 병원 환경을 마주하자 오히려 치료받기 두려워지는 마음이 엄습했다. 썩 좋아 보이지 않는 위생 상태에 오히려 병균을 얻어올까 겁이 났다. 다행히 팔은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 별다른 처치는 면했지만, 그 와중에도 한걸음에 병원으로 달려와 준 기관장의 모습은 거친 모래밭 속의 샘물처럼 깊은 안도를 안겨주었다.
낯선 땅에서 아프다는 것은 이토록 두려운 일이었다. 국토가 작아 서너 시간이면 수도 키갈리에 닿던 르완다와는 달리, 페루는 그야말로 다른 세계였다. 우아누코에서 리마까지 버스로 8~9시간, 비행기로도 1시간이 걸리는 거대한 땅. 응급 상황을 떠올리면 아찔한 공포가 밀려온다. 아프지 말아야지, 조심하고 또 조심하지만 이 광활한 자연과 일상의 변수를 어찌 다 피해갈 수 있겠는가.
혼자 남겨진 계절
우아누코의 동료 단원들이 하나둘 활동을 마치고 떠났다. 함께 페루 땅을 밟았던 동기들도 모두 짐을 쌌다. 1년을 연장한 나만 홀로 남겨진 텅 빈 자리. 비록 평소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바빠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지척에 한국어로 온기를 나눌 이가 없다는 사실이 새삼 서럽고 가슴을 저리게 했다.
내 마음을 아는 듯, 새벽까지 유난히 거칠게 내리던 빗소리에, 그만 맘 놓고 울었다.

단단해지는 시간
아팠다. 몸도, 마음도.
당황스러웠고, 서러워 눈물도 흘렸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모든 생채기의 시간을 지나고 나니, 나는 어느새 조금 더 단단한 결을 지니고 있었다.
낯선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혼자서 모든 것을 악물고 견뎌내는 일이 아니었다.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군가에게 기꺼이 손을 내미는 법을 배워가는 다정한 과정이었다.

우아누코에서 허락된 남은 1년.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1년처럼, 하루하루를 온 마음을 다해 살아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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