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 모든 것이 낯설고 숨이 턱 막히던 우아누코의 첫날을 기억한다.
편안하고 익숙했던 한국의 삶을 기꺼이 뒤로하고 이 먼 땅에 발을 디뎠을 때, 문득 가슴 한구석에서 치밀어 오르던 서글픔을 숨길 수가 없었다. ‘내가 대체 무엇을 위해 이 고생을 자처한 거지?’ 휑한 방안에 홀로 남겨졌을 때 밀려오던 그 막막함이란. 언어도, 공기도, 눈에 닿는 모든 풍경도 칼날처럼 낯설기만 하던 캄포의 일상 속에서 나는 위태로운 이방인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차갑고 거친 벽을 가장 먼저 맨손으로 허물어준 이들이 있었다.
한국을 향한 순수한 애정으로 뭉친 모임, ‘페코바라기’.
알고 보니 그들은 이 작은 도시 우아누코에서 각자의 자리와 기반을 갖추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나를 대할 때는 그 어떤 특권의식도, 거리감도 없었다. OJT 시절 둥지를 틀 집을 구하는 발걸음부터, 재래시장의 구석구석, 생필품을 파는 가게, 은행 업무, 그리고 낯선 지명과 모토 택시의 기본요금 하나까지. 처음 온 이방인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그들은 살림을 가르치듯 내 손을 잡고 세상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것은 단순한 호의가 아니었다. 낯선 땅에서 혼자 버티며 숨죽일 나를 향한 가장 따뜻한 구원이었다.
해외에 오래 살수록 느끼는 건, “저는 혼자서도 잘해요”가 결코 자랑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힘들 때 전화할 사람, 같이 밥 먹을 사람, 이유 없이 만날 사람이 있는 것도 삶을 잘 꾸려나가는 능력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삶의 질을 결정하는 건 결국 ‘오늘 저녁 같이 먹을래요?’라고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해외 생활에서 인간관계는 단순한 옵션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인프라이다. 잘 산다는 건 혼자서 뭐든 악착같이 해내는 게 아니라, 어디에 살든 내 사람들과 연결되어 사는 것 같다. 사람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것이 결국 나를 건강하게 살아가게 하는 힘인지도 모른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꼭 한국인하고 만 어울릴 필요도 없다. 한인 커뮤니티도 물론 소중하지만 그곳에만 머물면 내가 사는 세상은 생각보다 좁아진다. 현지 친구,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 나와는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해외에 산다는 것의 가장 큰 특권이 아닐까.
그 특권을, 나는 ‘페코바라기’ 친구들과 함께 누리고 있었다.
그 다정한 인연은 얕은 동정에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나라는 사람,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와의 관계를 진심으로 깊이 있게 이어가고 싶어 했다.
그들은 내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재료를 미리 준비해 두고, 마치 한국음식 강사를 초청하듯 나를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불러주었다. 함께 만들고 체험하는 자리였다.
루루의 집에서 함께 빚던 송편과 떡국, 북적거리던 식당에서 웃음꽃을 피우며 맛보던 김밥과 떡볶이, 플로르의 집안 가득 고소하게 퍼지던 잡채 냄새까지.

몇 차례에 걸쳐 이어진 그 맛의 향연 속에서, 그들이 보여준 반응은 “어머, 맛이 너무 환상적이에요!”라며 감탄을 터뜨렸다. 함께 음식을 만들고 서툴게 빚은 모양을 보며 박수를 치며 웃던 그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이미 국경을 넘어 진짜 친구가 되어 있었다.

한식에서 끝이 아니었다. 우리는 한복의 고운 자락이 담긴 ‘노리개’를 함께 만드는 작업에도 도전했다.

한 땀 한 땀 손끝에 정성을 모아 노리개를 빚어냈고,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직접 행사 부스를 열어 우아누코 사람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고 판매하는 즐거움까지 누렸다.

행사가 끝날 때마다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다음에 또 해주세요!”라고 외치던 그들의 목소리는, 지친 내게 일상을 버텨낼 가장 찬란한 연료였다.
이제 우아누코의 거리를 걷다 우연히 그들을 마주치면, 마치 고향의 다정한 옆집 아줌마를 만난 것처럼 가슴속에서부터 뭉클한 반가움이 왈칵 차오른다. 어디에서 어떤 축제가 있는지 소식을 먼저 전하고 안부를 묻는 그들의 마음을 보며, 나는 깨닫는다.
내가 이 낯선 땅에 스스로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었다.
그 사람들이, 그 따뜻한 온기가 나를 이곳에 기꺼이 살아가게 붙들어 매어 준 것이었다.
모든 것이 두렵고 불편하기만 했던 캄포의 하루하루. 그러나 이제 그 시간들은 날카로운 상처가 아니라, 내 삶에서 가장 깊고 찬란한 무늬가 되었다. 그리고 그 무늬의 결마다, 지구 반대편에서 건너와 내 생의 가장 소중한 인연이 된 이들의 따뜻한 얼굴이 새겨져 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