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에 울려 퍼진 애국가, 그곳에 남겨진 숨결

지구 반대편 하늘 아래,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함께 부르던 그 벅찬 순간

지구 반대편 낯선 고산 도시 한복판에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나의 작은 성취와 헌신으로 이 Campo 우아누코에 내 나라의 애국가를 부르는 순간 시야가 흐려졌다. 해외에 나가봐야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증명되는 셈이다. 그동안 겪었던 온갖 서러움과 땀방울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고 뜨거워졌다.

맘 졸이며 준비했던 프로젝트의 개소식(기증식) 날이다. 코이카 소장님도 오셨고 단원들도 모두 참석해주었다. 그리고 우아누코주의 주지사가 자리를 빛내주었다. 주지사의 스케줄에 따라 프로그램은 이리저리 밀리고 조금은 엉망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행사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이 벅찬 환희에 이르기까지, 처음 마주했던 우아누코의 CEBE 특수교육센터는 막막함 그 자체였다. 빗물이 새고 태양을 제대로 피할 수 없는 낡은 처마 밑. 버려진 박스를 주워다 교구를 만들며 아이들을 품어내던 선생님들의 지친 손길.

아무런 장비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 놓인 교실을 바라보며 나는 끊임없이 물었다. “이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뭘까?”

아프리카 르완다의 붉은 먼지 속에서 ‘다시는 현장사업에 삶을 매이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뻔히 보이는 예산과 눈에 밟히는 아이들의 필요 앞에서 결국 그 다짐은 무너지고 말았다. 내가 조금 더 고단하고 땀 흘리면 누군가의 삶에 선한 영향력이 닿을 것이라 믿었기에.

그러나 까다로운 코이카의 승인 절차와 거듭되는 보완 요청, 페루 타임에 젖어 있는 현지인들과 부대낌, 메워야 했던 수개월의 시간은 숨이 턱 막히는 스트레스와 깊은 무력감으로 다가왔다.

방 안에 홀로 앉아 ‘내가 과연 어디까지 짊어지고 갈 수 있을까’ 되뇌며 이방인의 외로움에 몸서리치던 밤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긴 터널을 지나 마침내 승인이 나던 날의 안도감이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마침내 완공된 학교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생명의 공간으로 변모해 있었다. 아무런 장비가 없던 공간에 재활 장비를 채우고 전문 물리치료 교사를 배치해 작업치료실을 열었다. 시각·청각·발달장애나 자폐로 소통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태블릿 20대를 도입해 ICT 학습실을 구축했고, AAC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콘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맞춤형 개별학습의 길을 텄다.

8개 교실의 스마트 TV는 선생님들의 수고를 덜고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 되었다.

완성된 교실 현판식, 페루 전통에 따라 문 앞에 매달아 둔 물이 든 토기 그릇을 깨뜨리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축제가 시작되었다. 현장 사업의 여정을 발표하는 자리, 스크린 화면 속으로 그간의 치열했던 기록과 슬라이드들이 넘어가는 순간 감격스러움에 그만 울먹이고 말았다.

코이카 페루 소장님의 인사와 기증서 서명, 주지사의 축사와 CEBE 교장의 감사 인사까지. 이어서 이 학교를 졸업한 장애 학생들의 감동적인 댄스와 남녀 한 쌍이 추는 페루의 정열적인 전통 춤 ‘마리네라’ 축하 속에서 행사는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하루의 소란이 가라앉은 방 안, 안데스 산맥을 넘어온 강한 바람과 서늘한 공기가 창문 틈으로 스며든다.

문득 그동안 켜켜이 쌓아두었던 힘든 과정들이 한 편의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벽을 마주한 듯 답답했고, 턱 끝까지 차오르는 피로와 스트레스에 매일 밤 지친 몸을 이끌며 ‘내가 왜 이 고생을 자처했을까’ 후회하기도 했다. 르완다의 다짐을 깨고 기꺼이 이 무거운 짐을 짊어졌던 것은, 결국 눈에 밟히는 아이들의 내일을 외면할 수 없었던 뜨거운 마음 한 조각 때문이었다. 특히 개소식 전날, 빗자루와 걸레를 직접 든 학부모들이 구석구석 손수 청소를 도맡아 하시던 그 뭉클한 뒷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모든 고뇌와 눈물의 터널을 지나 환하게 웃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깨닫는다.

한국에서는 평범하게 지나쳐 온 나의 시간들이, 이 캄포의 낡은 학교에서는 누군가의 내일을 바꾸는 귀한 자산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이곳에 남긴 것은 태블릿과 스마트 TV, 치료 도구들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스트레스와 절망을 딛고 이뤄낸 이 눈부신 성과 앞에서, 나는 비로소 진정한 보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누군가의 내일을 조금 더 환하게 밝혀주기 위해 기꺼이 건넸던 나의 발걸음. 그 땀방울과 눈물이, 이제 내 남은 인생의 가장 찬란한 보석이 되어 박힌다. 나는 더 이상 낯선 땅의 위태로운 이방인이 아니다. 이 땅의 온기를 품고, 아이들과 학부모 곁을 지키는 진정한 이웃이자 이곳의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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