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누코의 우아야 강, 깔리깐토 다리 — 아픔이 되어버린 그 길

달걀 흰자로 지은 다리, 아픔이 스민 길

우아야 강, 그리고 다리 하나

우아누코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우아야 강(Río Huallaga)은 안데스 산맥의 거친 숨결을 품고 북쪽의 아마존으로 흘러가는 거대한 강이다. 건기와 우기에 따라 성난 물살을 토해내기도 하고 고요한 품을 내어주기도 하는 이 강은, 이곳 주민들에게 단순한 물줄기가 아니라 삶의 터전이자 생명수 그 자체다.

그 우아야 강 위로 우아누코의 시간을 품은 오래된 유산이 하나 있다. 바로 ‘깔리깐토 다리(Puente Calicanto)’다. 1879년에 공사를 시작해 1884년에 완공된 이 아치형 석조 다리는 이탈리아 건축가들의 손을 거쳐 태어났다. 강바닥의 둥근 돌을 엮어낼 때 수많은 달걀 흰자를 석회 모르타르와 섞어 지었다는 독특한 공법 덕분일까. 세월의 무게와 거친 물살, 그리고 숱한 지진 속에서도 다리는 꼿꼿이 버텨내며 오늘날 페루의 국가 문화재이자 우아누코의 상징이 되었다. 약 60미터 길이의 다리 위, 반원형 발코니에 서면 탁 트인 우아야 강이 시원하게 내다보인다.

아침마다 건너던 그 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내게 이 깔리깐토 다리는 거창한 문화재나 관광지가 아니었다. 매일 아침 마주하는 출근길의 풍경이자, 팍팍한 이국생활 속에서 유일하게 탁 트인 시야로 숨통을 틔워주던 휴식처였다. 이 다리를 건널 때면 멀찍이서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던 선임 동료가 있었다. 지구 반대편 이 낯선 고원에서 한국인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였던가. 그 반가운 얼굴과 나누던 따뜻한 안부의 온기가 서려 있던, 참 정겨운 길이었다.

적어도,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하지만 그 평화롭던 출근길은 며칠 전, 한순간에 완전히 다른 얼굴로 바뀌어 버렸다.

어김없이 다리를 건너던 그 날 아침, 바로 앞에서 가던 젊은 여인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듯 쓰러졌다. 놀란 마음으로 다가가 그녀를 부축하며 “아유다(Ayuda·도와주세요)!”를 외쳤고, 주변 사람들을 향해 “라마렌 에메르헨시아(Llamen a emergencias·응급차를 불러주세요)!”라고 소리쳤지만, 어째서인지 모두들 굳어버린 채 발을 동동 구를 뿐 아무도 다가와 손을 뻗지 않았다.

쓰러진 여인의 뒤통수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채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한 채 손발을 심하게 떨며 스르르 의식을 잃어갔다. 쏟아지는 땀방울 속에서 나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의사도 아닌 내가 그녀 앞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 그 무게가 온몸을 짓눌렀다. 다행히 뒤늦게 경찰이 다가와 현장을 수습하고 상황을 정리했지만, 출근길에 오른 내 손과 발은 걷잡을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낯선 땅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만약 이 낯선 땅에서 나나 내 주변 사람에게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숨이 조여오는 공포였다.

그날 이후, 깔리깐토 다리는 더 이상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도, 관광명소도 아니었다. 아픈 장소가 되어버렸다.

그날의 비명 소리와 피 흘리며 떨던 여인의 모습은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무서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추억과 상처가 함께 새겨진 자리

화려한 역사와 달걀 흰자의 끈질긴 인내로 수백 년을 버텨온 단단한 다리 위에서, 인간의 삶은 이토록 연약하고 위태로울 수 있음을 본다.

지금도 문득문득 그때의 기억이 밀려올 때면, 부디 그날 쓰러졌던 여인이 무사히 건강을 되찾기를 마음 깊이 기도하게 된다. 그리고 고요히 흐르는 우아야 강을 바라보며 쓸쓸히 자문해본다.

과연 이 낯선 땅의 비상 상황 속에서, 우리의 “골든타임은 안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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