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조금 일찍 은퇴를 결정했던 건, 내 인생의 두 번째 막을 한시라도 빨리 열어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평소 소심한 성격이었던 나에게 ‘해외봉사’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어느 날, 세상 물정에 밝고 뭐든 똑부러지던 친구가 KOICA(코이카) 봉사단 이야기를 꺼내며 나를 설명회장으로 데리고 갔다. 설명회를 듣고 나오는 길,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외국어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내가 어떻게 저렇게 거창하고 큰일을 할 수 있을까. 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친구에 비해 나는 겁부터 났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서류를 제출했다. 어찌어찌 1차 서류 합격, 2차 면접 합격까지 지나갔는데 최종 건강검진에서 ‘재검’ 통보를 받았다. 과거 수술 이력이 있었던 터라 덜컥 자신감을 잃었다. ‘그럼 그렇지. 그저 내 건강 상태를 점검해 본 귀한 기회로 삼자’ 하며 마음을 비웠다. 사실 누구에게나 흔히 나올 수 있는 검사 결과였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으려 애써 마음을 다독였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최종 선발 통보를 받았다. 정작 나를 이 길로 이끌어주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친구는 1차에서 떨어지고, 얼떨결에 나만 혼자 남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눈앞이 아득해졌다. 당장 언어가 걱정되어 부랴부랴 벼락치기를 해보았지만, 평생 안 되던 외국어가 벼락치기로 될 리 만무했다. 게다가 국내 교육장에서 만난 예비단원들은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엘리트들만 모아놓은 것 같았다. 쉰을 넘긴 나이에 그 뛰어난 젊은이들 사이에 있으니 스스로가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그렇게 추위가 매섭던 2018년 겨울, 성탄절을 딱 일주일 앞두고 르완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서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데, 슬픔보다는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긴장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24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도착한 르완다의 공항은 마치 한국의 작은 간이역 같았다. TV 구호 방송에서 보던 열악한 풍경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프리카의 모범국가답게 깨끗하고 차분한 도시의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현장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임시숙소에 여장을 풀자마자 빡빡한 현지적응 훈련이 시작되었다. 현지 안전 수칙부터 생소한 ‘키냐르완다어’ 교육까지 진행되는데, 익숙지 않은 영어조차 잘 들리지 않는 마당에 전혀 모르는 현지어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훈련이 끝난 후, 동기들은 각자의 파견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내가 파견된 곳은 청각장애인 학교였다.

현지어에 적응하기도 전에, 이곳에서는 ‘수화’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만 했다. 돌이켜보면 파견 초기 나의 하루는 온통 ‘공부’ 또 ‘공부’뿐이었다. 눈을 뜨면 마주치는 온통 낯선 검은 피부의 사람들, 그리고 통하지 않는 언어 속에서 외로운 적응기를 버텨냈다.
하지만 이론만으로는 현장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었다. 부딪치고 깨어지며 나는 비로소 봉사의 참 의미를 배워가기 시작했다.
낯선 땅의 언어와 문화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품어야 한다는 유연성을 배웠고, 없으면 없는 대로,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자족하는 법을 터득했다. 내 조바심을 내려놓고 현지인들의 눈높이와 속도에 맞춰 걸어가는 내려놓음의 여유를 알게 되었으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뜻밖의 순간에 빛을 발하는 나만의 창의력을 발견하기도 했다.
파견 6개월 차, 활동 평가회에서 오랜만에 동기들을 다시 만났다. 헤어진 가족을 만난 것보다 더 가슴이 벅차올랐다. 무엇보다 내 나라 말인 ‘한국어’로 마음껏 수다를 떨 수 있다는 사실이 눈물겹게 감사했다. 그런데 단어가 금세 떠오르지 않아 버벅거리는 나를 보며 ‘이제는 0개 국어가 되어가는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국내 교육장에서 그렇게 유능해 보였던 엘리트 동기들도 현지적응에 애를 먹으며 저마다의 애환을 털어놓고 있었다.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어라, 다들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의외로 나만 잘 버티고 있는 건가?’ 소심했던 내가 뜻밖의 단단함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적응을 마치고 활동을 1년 더 연장하여 르완다에서 살아간 지 15개월째 되던 해, 전혀 예상치 못한 불청객인 Covid-19(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쳤다. 국경이 닫히고, 마치 전쟁터 같았던 키갈리 국제공항의 인산인해를 뚫고 특별기편으로 급히 귀국길에 올랐다.
긴 긴장감 끝에 무사히 도착한 한국의 인천공항. 화장실에 들렀다가 따뜻한 비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고였다.
‘아, 내 나라 대한민국… 참 장하다.’

겁 많고 소심했던 쉰 넘어의 도전. 르완다에서의 15개월은 그렇게 강렬하고 뜨거운 기억을 남긴 채, 내 인생 2막의 잊지 못할 첫 장으로 기록되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