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를 떠나기까지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별생각 없이 클릭한 광고 하나가 하루 전체를 바꿔놓을 때가 있다. 나에게는 이번이 그랬다. 현지 친구가 툭 던지듯 알려준 문화체험 투어 광고. 그동안 지겹도록 긴 버스,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 고지대 트레킹에 비하면 이번엔 꽤 편안한 여정일 것 같았다. 우아누코 주 안에서 유적도 보고, 현지인들의 달의 축제까지 직접 볼 수 있다니 — 부담 없이 마음이 먼저 가볍게 움직였다.
동료 한 명과 함께 아르마스 광장에 모인 시각은 새벽 5시 30분. 아직 도시가 잠에서 덜 깬 서늘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우리는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 점심, 입장료, 차량비까지 다 포함해서 109솔. 이 정도면 마음까지 홀가분해지는 기분 좋은 가격이었다.
3,700미터, 가루 유적지에서

도착해서 든든히 아침을 먹고 오른 곳은 해발 3,700미터, 가루(Garu) 유적지였다. 기원전부터 사람이 터를 잡고 살았다는 자리. 지금은 무너진 돌무더기와 흔적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지만, 그 앞에 서 있으니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지금 같은 현대적인 도구도, 기술도 없던 그 옛날에 선조들은 이 높은 곳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었다. 집을 짓고, 물을 구하고, 가족을 모아 살아가고, 심지어 죽은 이를 위한 자리까지 마당 한켠에 마련해두었다. 삶의 공간과 묘지가 나란히 놓여 있는 모습, 물을 길어 올렸을 우물터,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을 방의 흔적, 고된 삶 속에서 몸을 뉘었을 그 작은 공간들 — 그걸 하나하나 들여다보는데, 아득히 먼 세월을 건너온 선조들의 숨결이 이토록 또렷하게 다가왔다.

유적을 걷는 발걸음도 좋았지만, 그 풍경을 더 빛나게 해준 건 따로 있었다. 새파란 하늘, 그 위에 떠 있던 새하얀 구름, 거대한 산줄기 아래서 국경을 넘어 함께 걷던 이들의 따뜻한 눈빛. 마침 초라스(Choras) 지역의 가루 달의 축제 시기와 겹쳐서 투어가 자연스럽게 꾸려진 것도, 지금 생각하면 참 다정한 운명의 장난 같았다.
활기로 가득한 달의 축제 현장
숨을 헐떡이며 유적 탐방을 마치고, 우리는 축제가 열리는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은 아까의 적막함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화려한 만국기와 색색의 장식들이 바람에 신나게 펄럭이고, 주민들이 정성껏 차린 먹거리 장터가 구수하게 늘어서 있었다.
거기서 만난 현지 학생들은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고는 환호하며 사진을 찍자고 졸랐다. 낯선 이방인을 향하던 그 맑고 풋풋한 웃음소리는,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귀에 선하게 울린다.

한낮의 뜨거운 햇빛 아래 슬슬 나른한 졸음이 밀려올 무렵 — 둥, 둥, 묵직한 북소리가 골짜기를 깨웠다. 풍년을 기리는 제단에 불이 지펴지고, 한 해의 농산물을 가득 담은 바구니를 든 여인들이 춤과 함께 등장했다.

그 원초적이고 생생한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먼 길을 떠나온 이유가 온전히 설명되는 것 같았다.
하늘이 응답하던 순간
그런데 참 신기한 일도 다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따갑게 내리쬐던 햇빛이 스르르 구름 속으로 숨더니, 마치 달이 그들의 기원에 금세 응답이라도 하듯 하늘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우박이 굵게 떨어지더니, 곧이어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은 모두 흠뻑 젖은 채 허둥지둥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처마 밑에서 잠시 비를 피해보려 했지만 이미 온몸이 젖은 뒤였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이대로 내려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빗속으로 걸음을 던졌다.
골짜기를 내려오며
붉은 황토물이 발목까지 차오른 골짜기를 헤치며 비를 맞고 내려오는 길. 매서운 추위에 몸이 덜덜 떨렸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리는 듯한 해방감이 밀려왔다.
인생에 언제 또 이런 풍경 속에서 비를 맞으며 우아누코의 산을 내려와 보겠나 싶었다. 모든 걸 통제하려던 마음을 내려놓고, 그저 빗속에서 온전히 그 순간을 품어 안았던 하루. 흥미로우면서도 가슴 깊은 곳에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그런 진정한 문화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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