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마추픽추나 아름다운 남미의 휴양지들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내가 삶을 꾸려가고 있는 곳은 ‘Campo(캄뽀)’, 스페인어로 ‘시골’을 뜻하는 곳이다.
‘정겹고,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단어이지만, 사실 처음부터 내가 사는 우아누코(Huánuco)가 시골이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적어도 페루의 다른 큰 도시들을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시골이다 보니 한국처럼 소소한 문화생활을 즐길 만한 곳도 마땅치 않다.
그리고 처음 이곳에 적응하던 시기에는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해 참 많이 애를 먹었다. 주변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밤늦도록 창문이 흔들릴 만큼 시끄럽게 음악을 틀어놓고 춤추며 파티를 즐기는 이곳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아침 산책길도 쉽지 않았다.

길거리에 개들이 너무 많아 마음 놓고 걸어 다니며 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서야 KOICA 봉사단 남미 파견자들에게 왜 광견병 예방접종이 필수였는지 비로소 이해가 갔다.
길가에 높이 설치되어 있는 쓰레기통의 비밀도 알게 되었다. 높게 만들지 않으면 동네 개들과 고양이들이 온통 쓰레기 봉투를 헤집어 놓기 때문이었다.
낮이면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흙먼지가 그대로 입안으로 들어온다. 깜빡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 나선 날에는 온종일 입안에서 서걱서걱 모래가 씹히곤 한다.
깨끗하고 질서 정연한 한국의 도시, 철저한 쓰레기 분리수거와 공중도덕에 익숙했던 나에게 이곳의 일상은 매 순간이 낯선 도전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 흙먼지 뒤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숨어 있었다.
낮 동안의 수고로움을 씻어주듯 펼쳐지는 하늘은 놀라울 정도로 청명하다.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 손에 잡힐 듯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하얀 구름, 그리고 밤이 되면 하늘 가득 보석처럼 박히는 별빛. 그 별빛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멀리 있는 고국을 떠올리게 된다.

참 의외였던 것은,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따뜻함이었다.
작은 시골 마을인 우아누코에서 한국인을 이렇게 반갑게 맞아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K-POP, K-드라마와 한국 음식의 인기는 이곳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길을 걷다 보면 현지인들에게 사진을 같이 찍자는 부탁을 받을 때가 있다. 그들은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기도 한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희고 깨끗한 피부 때문이었는지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이, 이제는 친근하게 다가와 나에게 길을 묻는다.
이곳의 강렬한 햇빛 아래 피부가 조금씩 그을린 탓에, 이제는 나를 자기들과 똑같은 현지인으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나 역시 그 오해가 싫지 않다. 그만큼 내가 이 땅과 사람들 속으로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토요일이 되면 일주일 동안 먹을 양식을 준비하는 즐거운 일상이 시작된다.
지역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싱싱한 농산물을 가져와 저렴하게 파는 토요 장터, ‘라 페리아 쿨투랄(La Feria Cultural)’이 열리는 날이다.

왁자지껄한 장터에 들어서면 어릴 적 고향에서 보았던 정겨운 5일 장의 풍경이 겹쳐 보인다.
“외국인이 이런 것도 먹을 줄 알아?” 신기해하는 상인들은 무심한 듯 정이 담긴 덤을 툭툭 얹어준다. 덤으로 받아 든 야채 한 더미에서 만국 공통의 따뜻한 시골 인심을 느낀다. 괜스레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불편함과 눈부심이, 낯섦과 정겨움이 오가는 이곳.
나는 오늘도 페루의 Campo, 우아누코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의 모습도 조금씩 더 이 땅과 사람들을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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