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르완다로 — 우유 한 봉지에 담긴 생명의 무게, 그리고 삶의 절박함

우유 한 봉지에 담긴 생명의 무게, 그리고 삶의 절박함

르완다의 붉은 땅, 가슴 아린 삶의 조각들

코로나라는 거센 풍랑 속에서, 마치 전쟁터 같던 키갈리 공항을 떠나온 지 2년 5개월. 팬데믹의 긴 터널을 지나 내가 다시 도착한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는 예전과 달랐다. 맑고 청명했던 하늘은 자욱한 공해로 흐려져 있었고, 길거리를 가득 메운 모토택시들은 거친 경적을 울리며 숨 가쁘게 도로를 메우고 있었다.

지원받은 주거비에 맞춰 어렵게 구한 집은 바퀴벌레의 온상이었고, 매일 아침이면 벽을 타고 오르내리는 도마뱀이 낯선 이방인을 반겼다. 익숙함은 사라지고, 더욱 험난해진 현실이 나를 먼저 맞이했다.

내가 배치된 곳은 레메라 보건소, 이곳은 가난과 질병의 그늘이 가장 짙게 드리워진 곳이었다. 매일 보건소 마당에는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줄이 이어졌다.

이름만 입력하면 모든 정보가 나오는 한국의 전산시스템과 달리, 수많은 종이 파일 속에서 일일이 환자 카드를 찾고 손으로 기록을 남겨야 했다.

보건소를 찾는 환자들의 대부분은 AIDS 환자들이었다. 병의 경중에 따라 30일 또는 60일에 한 번씩 약을 받으러 찾아왔다. 놀랍게도 그들은 자신의 질병을 담담하게, 때로는 밝은 표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밝은 얼굴 뒤에는 늘 서늘한 두려움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면역력이 떨어진 그들에게 폐질환 같은 합병증이 찾아오는 날은 곧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평소 유쾌하게 인사를 건네던 30대의 한 환자가, 그날따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한 채 서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내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

나의 주요 직무는 영양실조 파트였다. AIDS 가정과 영양실조 아동들을 발굴하고, 일주일에 한 번 우유나 영양식을 나눠주는 일이었다.

그러나 따뜻한 시선만으로는 품어내기 힘든, 가슴 시린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날들이 많았다. 기부로 들어오는 우유는 유통기한이 없었기에, 부정 유통을 막기 위해 우리는 지난주에 나눠준 빈 우유 봉투를 일일이 회수하여 확인했다. 이를 저렴하게 재래시장에 파는 이들이 있었고, 어떤 이들은 봉투 수량을 채우려 길거리에 버려진 더러운 빈 봉투를 주워 오기도 했다.

어느 날, 영양식이 전면 중단될 위기에 처했던 20대의 어린 엄마, 나는 보건소 한쪽 구석에서 어깨를 들썩인 채 울고 있던 그 엄마를 마주했다. 붉어진 눈시울로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을 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나를 깊은 충격에 빠뜨렸다.

“우유는 내 아이 한 명의 배를 채우지만, 그 우유를 팔아 감자를 사면 우리 온 가족이 굶지 않고 며칠을 버틸 수 있어요…”

우리가 생각했던 ‘영양’과 그들이 살아내는 ‘생존’의 기준은 너무나 달랐다. 한국에서 챙겨온 여분의 옷을 건네주어도 그들은 입지 않고 시장에 나가 팔았다. 당장의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그들에게 옷과 우유는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닌, 가족의 생계를 잇는 유일한 화폐였던 것이다. 비난할 수도, 탓할 수도 없는 그들의 일상이 내 마음에 묵직한 돌덩이 하나를 얹어놓았다.

그렇게 그들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 지 1년. 나는 지역주민들의 기초 보건의료체계를 바꾸는 현장사업에 착수했다. 모성 사망률을 낮추기 위한 의료장비를 도입하고, 땔감 연기와 강렬한 태양 때문에 눈이 상한 주민들을 위해 안과 장비를 갖추었다.

무엇보다 환자들이 뙤약볕 아래서 무한정 기다려야 했던 그 길고 길었던 줄을 줄여주기 위해, 접수부터 결제까지 이어지는 온라인 전산 환경을 구축했다.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현지 직원들 사이에서, 아들처럼 영리하고 유능한 젊은 보건소장이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가 없었다면 결코 해내지 못했을 일이다.

악명 높은 ‘르완다 타임’을 극복하고 마침내 첫 온라인 전산 접수가 이루어지던 날, 보건소 앞마당의 줄은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었다.

돌아보면 그 낯선 땅에서 내가 건넨 것은 한 팩의 우유와 새로운 장비였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나에게 건넨 것은 삶의 절박함과 그 안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생명의 무게였다.

떠나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르완다의 붉은 땅에서, 나는 오늘도 그 소중하고 아린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가슴에 담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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